*대담중 언급된 작품들 중에서 정발된 작품 제목은 정발 제목으로,정발 안된 제목은 그냥 원제 일어로 적었음. 탈고 없이 우다다 번역한 거 그대로 올리는 거라 그냥 이런 내용의 글이구나 정도로만 파악해주세요. (' ');
참가자:
카네다 쥰코 (야오이/비엘 연구가/사회학자) 참고로 이분 트위터도 재밌음. @kaneda_junko 신세계 파심...()
후쿠다 리카 (과자 연구가)
야마모토 후미코 (편집자/작가) (파후의 전 편집자)
비슷한 주제니 번역했던 요시나가 후미 대담집 발췌도 붙여놓음
BL만화는 하이브리드이다!
-우선 세 분이 어떤 식으로 야오이나 보이즈 러브 (이하 비엘)을 읽기 시작했는지 알려주세요.
마토 사나미의 FAKE 형사 버디물 꽃 이야기 삽화. 마리미테 같은 소설의 원류라고 보면 되는 소녀 소설들.
야마모토: 제가 처음에 그런 것에 흥미를 가지게 되었을 때는 "보이즈 러브" 라는 단어는 아직 없어서 "야오이" 라는 단어가 쓰이고 있었어요. 1985년도쯤에 유행하던 "캡틴 츠바사" 의 동인지 붐에 풍덩 빠져버린게 계기였죠.
카네다: 야마모토 씨는 도쿄에 계셨던 거죠?
야마모토: 네, 그래서 코미케에도 매번 놀러갈 수 있었고 서점에서 동인지를 구할 수도 있었어요.
카네다: 일반 서점에 동인지가 놓여있었나요?
야마모토: 진보쵸에 있는 쇼센 북마트 같은 곳에는 있었어요. 4살 연상인 언니의 영향도 컸네요. 같이 코미케에 가서 동인지를 사기도 하고. 처음 "캡틴 츠바사" 의 야오이 동인지를 봤을 때는 "이런 걸 읽고 싶었어!!!" 하고 이유도 모른 채 흥분했었어요. 그대로 애니 패러디 물에 한창 빠져있을 때 에미쿠리 씨의 창작 동인지를 보게 되었고. 그 이후, 비엘이란게 등장하고 비엘 잡지가 창간되기 시작하더군요.
카네다: 코다카 카즈마 씨의 인기가 대단했지요.
후쿠다: 야마모토 씨는 비엘 첫세대에 가까우시죠.
카네다: 전 세대로 따지면 야마모토 씨보다는 조금 뒷세대가 되겠네요. 토야마 현이라는 지방에 살았는데 굉장히 보수적인 지역이었는데도 불구하고 공민관(*지역 문화센터 같은 곳)에 "바람과 나무의 시" 의 가장 야한 권이 놓여있었어요. 초등학교 여학생들이 그걸 다같이 돌려읽었고요(웃음). 83년 때쯤 일이네요. 전 그 때는 주인공인 질베르가 여자애라고 생각했어요. 그 이후 "파타리로!" 를 읽기 시작했을 때도 한동안 마라이히를 여자애라고 생각했었고. 질베르는 14살, 마라이히는 18살 설정이니까 아직 선이 가는 느낌이 남아있어도 당연한데 말이죠.
후쿠다: 그래도 역시 조금 색기있게 그려졌죠.
카네다: 선이 부드럽게 그려져있었어요. 하지만 아마 "파타리로!" 를 계속 개그만화로 좋아하면서 읽던 도중에 몇 번이고 "미소년"이란 단어가 나와서 "아, 남자애구나" 하고 깨닫는 순간이 있지 않았을까... 그러다 초등학고 5~6학년이 되었을 때,언니의 친구도 역시 "캡틴 츠바사" 의 동인지를 구해온 거죠. 저도 그걸 읽고 바로 "이거다!!!" 하고 느꼈어요. 그리고 중학교 2학년 때쯤 쿠리모토 카오루 씨의 야오이 로맨스 소설 "날개가 있는 것" 를 집어들게 되었고. 거기서부터는 정말 늪에 빠진 것 같았어요. 설마 이게 직업이 될 정도일 줄은 몰랐지만요 (웃음).
다만 그 당시의 작품들은 전부 비극이예요. 사랑이 성취되기 위해선 최종적으로 죽어야 했죠. 잡지 "JUNE" (이하 쥬네)가 나왔을 때도 슬픈 드라마가 필요한 거라고 다들 말하곤 했어요. 이런 장르는"탐미" 라고 불렸고. 반드시 연장자가 연하를 귀여워하는 구도의 슈도 (*일본의 중세~근세 시기에 여성이 배제되었던 절/신사/무사 무리에서 주로 보여졌던 연장자가 신분이 낮은 소년과 성행위를 가지며 부하로서 키워주던 관계) 같은 분위기도 있었고요. 그런 점이 조금 싫어서 계속 읽으면 질리더라고요. 그럴 때 코미케에서 남자들의 연애를 그리는 작풍이 소년만화와 융합한 거예요. 저는 거기서부터가 비엘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카네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코다카 카즈마. 비교적 최근 그림. 시대물 시절의 나카무라 슌기쿠 basso=오노 나츠메 우치다 카오루
야마모토: 저도 쥬네는 다소 두근두근하며 읽긴 했지만 제 취향에 썩 맞지는 않았어요. 그리고 실제로 고등학교 시절에 게이 친구가 있어서 그 애가 행복해지지 못하는 세계는 정말 싫다고 생각했었고.
카네다: 사랑이 이루어지기 위해선 죽어야하는 쥬네의 세계관은 창작하는 건 자유고, 명작도 잔뜩 나왔지만 동성애에 대한 이야기가 그런 거 밖에 없다는건 밸런스가 나쁘죠.
야마모토: 하지만 어느샌가 비엘에서 베드 엔딩은 안돼, 라는 방향으로 나아가기 시작했죠. 그래서 비엘이 퍼진 후에는되려 반동으로 이번엔 젊은 애들이 쥬네 쪽으로 회귀하기도 하더라고요. 좀 더 슬픈 이야기도 읽고 싶다는 욕심이 나나봐요. 저도 90년대에 비엘의 탄생을 눈 앞에 했을 때 좋게도 나쁘게도 꽃이라고 생각했어요. 앞으로 몇 년 안에 시들어 버릴 거라고 생각했어서.
카네다: 저도 90년대 안에 사그라들 거라고 생각했었어요. 대학 시절에 부녀자라고 밝히고 다니는 건 주변에서 저 밖에 없었고.
후쿠다: 왜 비엘이 끝나지 않았다고 생각하시나요?
카네다: 훌륭한 작품들이 잔뜩 나와서 비엘을 즐기는 사람층이 쥬네팬이나 동인, 부녀자 뿐만이 아니라 점점 늘어갔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야마모토: 히트작이 계속 나온다는건 분명 큰 이유 중 하나라고 봐요. 초창기엔 코다카 씨의 "KIZUNA" 같은 히트작이 이 장르에 기세를 몰아주고, 그 기세를 탄 새로운 작가들이 모여서 여러가지 특징을 지닌 잡지들이 늘어나고. 그림체도 점점 받아들이기 쉬운 쪽으로 변해왔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비엘 최대의 히트작을 만들어낸 나카무라 슌기쿠 씨가 등장한 것도 크겠죠. 그 이후 요시나가 후미 씨 등이 일반 잡지에서도 작품을 연재하고, 일반 잡지만 읽던 독자들이 "아, 이 사람 비엘도 그렸었구나" 하고 역유입 되는 경우도 생기기 시작했어요.
후쿠다: 비엘은 하이브리드란 느낌이 들죠. 소녀 만화가 가진 멘탈리티에, 소년 만화의 행간을 망상한 스토리와 그림체가 융합해있어요. 소년 만화는 '이긴다' 라는 주제가 가장 큰 전제죠. 전 승리가 가장 좋다는 사람은 인생에 절망해본 적이 없다고 생각해요. '난 안돼' '글러먹었어' 라고 말하고 있어도 어디선가 0.001% 정도는 '이길 수 있어' 라고 생각하고 있는게 아닐까 싶거든요. 그런 사람은 소년 만화를 읽으면서 용기를 얻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정말 절망해본 적이 있으면 그런 식으로 만화를 읽을 수는 없어져버려서, 어떻게든 행간을 읽어내게 되죠. 또 "승리"가 가장 중요하다고는 그리지 않는 소녀 만화가 그런 사람들을 받아주는 그릇이 될 수 있고요. 그걸 다 섞어서 하고 있는게 비엘이라고 생각해요.
출판사의 역사로 보는 비엘 만화
야마모토: 비엘 잡지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비엘은 큰 유명 출판사에서 태어난 것들이 아니에요. 가장 처음엔 토오 쇼보의 "GUST", 세이지 비블로스의 "MAGAZINE BE X BOY" 등 작은 출판사가 주류였어요. 초창기엔 역시 세이지 비블로스가 대단했죠. 코다카 씨나 마토 사나미 씨, 코이데 미에코 씨의 "放課後の職員室" 등이 있었으니까요. 지금도 "BE X BOY" 는 왕도 비엘 잡지 중 하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애초에 남자와 남자의 "마가렛" 을 만드는게 컨셉이었다더라고요. 92~93년도부터 비엘 잡지가 생기기 시작해서 눈 깜짝할 사이에 여러가지 잡지들이 툭툭 생겨났죠. 창간과 휴간을 반복하면서... 하지만 그 당시 생겨난 잡지들이 아직 남아있어요. 호분샤의 "하나오토" 같은 경우는 지금 20년이 넘었죠.
카네다: 오래 살아남은 잡지 중에선 토쿠마쇼텐의 "Chara"나 타케쇼보의 "레이진" 등이 있네요.
야마모토: 90년대 후반 이후 나온 잡지 중에 아직 남아있는게 더 적을 지도 모르겠어요. 지금 생각나는 건 신쇼칸의 "Dear+" 나 겐토샤 코믹스의 "루틸" 정도네요. 또 2000년대 이후 비엘의 인지도가 높아진 데에는 주류 출판사 이외에, 도쿄만화사나 아카네신샤 등에서 간행된 작품들이 인정받기 시작한 것도 크다고 생각해요. 최근에는 쇼덴샤에서 나온 "onBLUE"가 존재감 있지요.
카네다: 비엘 작가를 발굴한다는 건 편집자가 코미케에 가서 자기 나름대로 찾아오는 거잖아요. 예를 들면 도쿄만화사에 있던 편집자가, 약간 마이너한 장르의 동인지에서 쿠모타 하루코 씨를 찾아낸 건 굉장하다고 감탄했어요.
후쿠다: 비엘의 편집자를 저는 언제나 플랜트 헌터(*중세 유럽 새로운 식재료나, 약초, 향신료 등을 찾아헤메던 탐험가) 로 비유하고 있어요. 대항해시대의 플랜트 헌터가 미지의 비경에 발을 들여서 처음으로 "찾았다!!!!" 하고 외치는 그런 느낌. (웃음) 어디에 숨어있을지 모르는 재능을 찾아내서 키워준다는 건 정말 굉장한 일이예요. 작가도 동인지에서 좋아하는 장르를 그리는 건 괜찮지만, 상업지에서 오리지널 창작물을 그릴 때 직업으로 지속해나갈 수 없는 경우도 있을테니까요.
야마모토: 그러게요. 편집자가 작가의 감성을 믿고 뒤돌아보지 않고 밀고 나가야하는 면이 있다보니 작가에 대한 신뢰가 중요하게 여겨지는 장르 같아요. 비엘의 편집자에게 요구되는 능력이란 씨앗부터 육성한다기 보단 재능있는 새싹을 발견할 수 있는 감식안일지도 모르겠네요.
카네다: 애초에 다른 만화계, 특히 단행본을 몇백만부나 팔아치우는 유명한 출판사에는 도제 제도가 있잖아요. 작가를 지망하는 사람이 원고를 편집부에 가져오건 상에 응모하건 해서 모이면, 담당 편집자가 신인 작가에게 "누구 누구씨의 어시스턴트를 해보시면 어떨까요? " 하고 제안해서 그 선생님으로부터 여러가지를 배우게 되죠. 그 선생님과 상성이 좋을지, 잘 가르쳐줄지 아닐지는 운에 달렸지만. 배울 수 있는 환경에 놓임으로서 그 출판사 분위기에 맞는 만화를 그릴 수 있게 되는, 일종의 학교 제도 같은 것이 있죠.
후쿠다: 그거와 비교해봐도 동인지의 세계에서 탑이 된다는 건 어떤 의미 정말 굉장하죠.
야마모토: 동인계에서 팔리는 작가의 특징으로는 셀프 프로듀싱 능력이 높다는 인상이 있어요. 자기 선전을 잘한다는 뜻이 아니라, 아무 것도 없는데서부터 스토리를 짜고 콘티를 그린다. 담당 편집자의 어드바이스 없이 그걸 할 수 있냐 없냐가 중요하게 되니까요.
카네다: 동인 중에서도 뛰어난 사람이란, 좋아하는 것만 그리는게 아니라, 이렇게 하면 사람들이 기뻐하더라, 기쁘게 하고 싶어, 라는 마음이 큰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후쿠다: 확실히, 작가 자신의 편집 능력이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다른 장르의 만화와 비교하면 특수하죠. 저는 역시 가장 기분 나쁘다고 생각했던 건 제가 열심히 읽어왔던 소녀 만화들이 반드시 남자의 눈을 통해서 만들어졌다는 거였어요.
야마모토: 아아~
후쿠다: 소녀 만화라도 담당 편집자는 반드시 남자. 편집장도 반드시 남자. 위화감을 느꼈어요. 왜냐면 소년 만화는 전부 남자가 만들고 남자가 읽는데.
카네다: 그러게요. 반대로 소년 만화를 전부 여성이 만들었다고 생각하면 그건 그거대로 굉장히 이상하네요.
후쿠다: 그 아저씨들의 OK를 받지 않으면 저희들은 그 작품들을 전혀 읽지도 못했을 거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의 그 아연한 기분이란.
야마모토: 24년조 작가들이 소녀 만화에서 소년을 주인공으로 세우기 위해 말 그대로 편집자와 싸웠다고 하니까요.
후쿠다: 한 가지 좋은 점이 있었다면 남자 편집자들은 "여자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몰라" 하고 방치해버릴 때가 있어서, 소년 만화의 딱 틀이 잡힌 팀 체제의 제작현장에 비하면 비교적 규율이 허술한 측면도 있었다는 거죠. 책을 내보니까 굉장히 인기가 많아서 남자 편집자가 "(왜 팔리는지) 전혀 모르겠지만 마음대로 하셔도 돼요" 하고 말해온 경우도 있었다고 들었어요. 무츠 A코 씨라던가. 그러니까 남자와 팀을 짜는게 절대 안된다는게 아니라, 남성의 시선이 들어가서 좋은 작품도, 작가들이 싸워가며 만들어냈기 때문에 더 좋아진 작품도 있었다고 생각해요. 편집자 전원이 전부 여성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건 절대 아니고. 역시 남녀 반반 정도의 상태가 제일 이상적이겠죠.
카네다: 최근 의욕있는 만화 편집자들은 코미케가 열리지 않는 시기엔, 비는 시간을 이용해서 pixiv (이하 픽시브) 를 보고 있는 모양이예요. 픽시브를 보고 "이 사람은 잘 그린다!" 싶으면 연락처를 알아보고 컨택한다고 들었어요.
후쿠다: 픽시브에서 신인 발굴이 이뤄지고 있다는 거군요.
카네다: 신인 발굴의 현장은 픽시브로 옮겨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픽시브에만 작품을 올리는 사람들도 있어서요. 게다가 웹매체를 갖고 있는 회사도 늘어나서, 픽시브에서 컬러 원고를 충분히 그릴 능력이 있다고 판단이 되면 그대로 게재할 수도 있으니까요.
후쿠다: 컬러판 만화는 늘어나겠죠. 이 정도로 넷상에 작품이 많이 올라오면 타블렛 류로 작품을 보는 사람도 더 늘어갈테니.
카네다: 예를 들면 "ブサメン♂~イケメンの作り方~" 를 그린 노노미야 치요코 씨는 전자 서적에서부터 데뷔한 사람이었죠?
후쿠다: 노노미야 씨의 인터뷰를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는데, 비엘을 그리고 싶다고 생각했을 때 "3P다!!!!" 라는 벼락같은 깨달음이 내려왔다고 해요. 그래서 그렸더니 정답이었다고. 거기서 반대로 종이 매체로 출판할 수 있게 되었다고.
야마모토: 전자 서적의 비엘 잡지는 새로운 움직임을 만들어내고 있어요. 출판사 측도 작가에게 제의하기 쉬워지지 않았을까요. 이 사람을 써보고 싶은데 갑자기 종이 매체로 출판하기엔 리스크가 크니까 그럼 우선 전자 서적에서, 하고 말을 걸기 쉬워졌으니까요.
비엘이 획득해온 관계성의 표현이란
카네다: 저는 비엘의 미학이란 역시 커플을 그리는 거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걸 위해 두 사람이 어떤 관계성에 놓여있는지를 설명해야만 하죠. 예를 들면 떡씬에서 남성향과의 차이는 굉장히 확연해요. 옆에서 보는 장면이 유독 많아요. 두 사람의 관계성을 보여줘야 하니까, 공도 수도 같은 장면에 나와야 하는거죠. 그래서 얼굴의 정면이 아니라 둘이 동시에 보이는 측면 구도를 많이 취해요. 남성향의 구도는 주인공 1인칭의 시점으로 보는 경우가 많죠.
후쿠다: 남성향 만화는 남주인공 얼굴은 달걀 귀신 상태로 상대 여자 캐릭터의 얼굴만 세심하게 그려지는 경우가 보통이예요. 그건 독자가 자기를 주인공에게 투영해서 읽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지만요.
카네다: 하지만 역시 비엘은 두 사람, 양쪽을 다 보고 즐기는게 중요하단 말이죠.
후쿠다: 비엘은 이야기가 시작할 때 등장인물의 스펙이 전부 나오는 경우가 많죠. 공은 키가 182 센티고, 수는 175센티 라던가. 두 사람이 어느 정도 키 차이가 나는지 반드시 그려져 있어요. 결국 그것도 관계성 중 하나니까. 나이차가 얼마나 나는지, 직업이 어떤지. 거기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돼요.
카네다: 그런 의미에선 나카무라 슌기쿠 씨는 정말 알기 쉽게 그려준다고 생각해요. 표지를 보는 것만으로도 수는 체격이 작고 개구지고 귀여운 얼굴로 '사람들 앞에선 제발 그만둬' 하고 곤란해하는 표정이고 공은 눈빛이 날카롭고 키가 큰 어른이면서 '뭐 어때, 사람들에게도 보여주자고' 하고 수를 끌고가는 느낌이 난다, 라는 관계가 전부 전해져와요. 공이 어떻게 관계를 리드해가나를 상징하듯이 크게 그려진 손이라던가, 그림만으로도 알기 쉽죠.
카네다: "순정 로맨티카" 시리즈에 관해선 아마 편집부와 잘 상담해가며 그리고 있는 것 같죠? 그건 비엘에선 굉장히 드문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보통 비엘 만화는 1화나 1권 정도의 단편으로 끝나는 걸 전제로 그려지니까요. 나카무라 슌기쿠 씨를 기용하면서 편집부 측은 적어도 몇 권 정도는 시리즈로 이어갈 각오를 하고 만들기 시작한 거 같아요.
야마모토: 그러게요. 비엘이란 장르의 역사가 20년 정도 되는 것 치고는 10권을 넘어가는 장편물은 굉장히 적죠.
후쿠다: 역시 단편이 주류죠. 연재가 목표가 되는 세계가 아니에요. 소년 만화에는 "장기 연재" 라는 타이틀이 있는데 말이죠. 게다가 소년 만화는 당연하다는 듯이 그려지는 '전투' 가 있어서, 어떻게 잘 싸워나가게 할 것인지, 이런 저런 작법이 쓰여요. 하지만 비엘은 그렇지 않죠. 비엘에서 연구되는 건 "관계성" 이에요. 비엘에서 최초로 획기적이었던건 에미쿠리 씨가 그린 연하공. 거기서부터 지금은 다채롭게 그려지는 관계성이 진화해왔죠. 노인수가 나오는 인기작도 있고, 수인이 나오는 케모미미 물도 있고, 체격이 우락부락한 캐릭터가 수로 나오는 가치무치 계열도 있고요. 소녀 만화의 연애물에선 역시 자기를 투영할 수 있는게 여자 주인공=나,인 경우가 많으니까요. 그게 비엘에선 관계성을 구름 위에서 관찰하고 있는 느낌이 있어서, 막노동꾼들이 나오건, 인성이 글러먹은 캐릭터가 나오건 상관없이 다채로운 캐릭터들이 나와도 되는 거죠.
카네다: 이건 연구자인 아다치 노리코 씨가 지적한 부분인데, 지금의 비엘의 원류 중 하나였던 소년애 만화가 나오기 시작한 70년대에는, 아직 여자는 25살 넘으면 결혼해서 가사육아를 담당하게 되는 분위기였어서, 소년애는 그려지는 것만으로도 표현의 범위가 확연하게 넓어졌어요. 의도한 건 아니더라도 주인공에 남자 캐릭터를 세움으로서 역사의 무대에서 활약하는 사람이나, 여러가지 직업을 가진 사람들을 그릴 수 있게 되었죠. 그런 의미에선 여 주인공으로 리얼리티를 추구하는 소녀 만화보다도 비엘은 더 많은 배리에이션을 만들어낼 수 있는 거예요. 미우라 시온 씨는 비엘에는 여러가지 직업이 그려진다고 지적했는데, 그건 현대 일본에서도 실질상 남성에게만 직업의 다양함이 허용된다는 뜻이라고 봐요. 여자만 있는 막노동 판이라던가, 일본 내각의 대부분이 여성이라던가, 그런 이야기를 그리면 너무나도 현실과 동 떨어져있는 설정이라 공감할 수 없다는 사람들이 많아서 쉽게 시도해볼 수 없거든요.
후쿠다: 그리고 비엘이란 장르에선 작가의 그림 실력 자체에 정말 크게 좌우된다고 생각해요. 코다카 카즈마 씨가 최초로 소년 만화 그림체로 비엘을 그린 거부터 시작됐죠.
야마모토: 코다카 씨는 떡씬에서 윤활제를 제대로 그리기 시작했다는 것만으로도 당시엔 큰 충격이었어요. (웃음)
야마모토: 주름을 그린다고 다가 아니죠.
카네다: 맞아요! 비엘은 여러가지를 어떤 의미 절제없이 다 끌어들여서 커져온 장르라고 생각해요. basso 씨가 처음 나왔을 때 외국의 일러스트 같은 그림으로 외국의 이야기가 그려져있는게 정말 신선했어요. 일본 만화나 애니만 봐서는 이런 그림은 그릴 수 없을텐데! 하고 놀랐죠. 만화 이외의 세계의 영향도 받고 있는거구나, 하고 실감했달까.
야마모토: "이걸 그리다니!" 란 의미로 어떤 의미 충격을 받은 건 우치다 카오루 씨.
카네다: 아아, 우락부락한 근육 아저씨 수라던가. 그리고 엉덩이 털을 그리셨죠, 우치다 씨 단행본에 그 경위가 쓰여있었는데, 엉덩이 털을 그리면 편집자가 화이트 칠을 해서 다 지워버리더래요. 그래도 지지 않고 꾸준하게 엉덩이 털을 그렸더니 "에휴, 그렇게 그리고 싶으시면 그리세요" 하고 지우지 않기 시작했다고.
야마모토: 표현법을 개척해냈군요.
야마모토: 그건 모에에 대해서도 똑같이 적용되는 이야기라고 생각하는데, 자기가 아무 것도 없는데서부터 "난 이런게 좋아!" 하고 발굴해내는 건 사실 조금 테크닉이 필요한 일이죠. 하지만 상업 작품같이 손에 넣기 쉬운 형태로 여러가지 모에가 제시되어 있으면 "아, 난 이런 걸 좋아하는구나" 하고 깨닫게 되면서 선택의 폭이 넓어지는 경험을 한 적이 종종 있어요. 이 20년의 역사 속에서 말이죠.
카네다: 그러게요. 요즘은 정말 별 게 다 있으니까요.
야마모토: 야쿠자가 있다면 학원물도 있고, 예능계가 무대인 게 좋다면 그런 것도 있고, 샐러리맨끼리가 좋으면 그것도 고를 수 있고.
카네다: 야마시타 토모코 씨처럼 매 작품마다 다른 방식으로 실험하는 듯한 작가도 있죠. 최근작인 "さんかく窓の外側は夜" 는 연애를 하는 것도 아닌데, 주인공들이 제령할 때 왠지 야해지는 브로맨스 물이에요.
후쿠다: 냄새계열(ニオイ系: 냄새만 풍기고 떡 안치는 호모) 이죠. 하지만 남자 둘이 몸을 포개듯이 행하는 제령이 섹스보다 더 야해.
파인더 시리즈
후쿠다: 그리고 남성도 임신할 수 있죠(웃음). 비엘은 젠더 SF니까요. 좋은 예로는 고토부키 타라코 씨의 “SEX PISTOLS.” 성별을 뛰어넘은 표현이 가능해진, 쉬이 볼 수 없는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영향받은 작품 수가 많고 다채로워서 수비범위가 넓은 작가가 극단적인 방향으로 여러가지가 혼합했을 때 오리지널리티가 높아지더라고요.
야마모토: 비엘의 기본으론 남자와 남자애가 만나서 행복해진다, 라는 꽤 단단한 틀이 있잖아요. 하지만 그 틀 속에서도 비엘이 다루는 건 정말 다채로워서…, 그 안에서 오리지널리티란 무엇이냐고 물으면 역시 그 사람 밖에 그릴 수 없는 것이 절대적인 오리지널리티라고 생각해요.
2차 창작은 오리지널리티의 샘
후쿠다: 비엘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2차 창작물은 저작권을 따지자면 그레이 존이죠.
카네다: 하지만 대부분의 비엘 작가들은 2차 창작 출신이죠(웃음).
후쿠다: 그래서 그 그레이존을 정말 없애려 들면 현재 만화 컬쳐 자체가 굉장히 수축될 거라고 생각해요. 아트라고 할까, 무언가를 표현하는 일에 대한 규율이란 시대에 따라 항상 변해요. 제작자의 권리 이익을 지키는 건 물론 굉장히 중요한 일이지만 ⓒ 라는 저작권의 개념은 디즈니 이후로 퍼진 거고 비교적 최근의 것이잖아요? 하지만 그런 저작권 문제가 있다 쳐도 무언가를 읽고 감동해서, 그 감동에서 나오는 충동으로 작품의 패러디를 그리고 싶어지는건 굉장히 자연스러운 기분이라고 생각해요.
카네다: 그렇죠. 모사해서 그린다던가.
후쿠다: 그 다음에 스토리에서 행간을 파헤칠 수 있다면 그 틈을, 완결해버린 다음이라면 그 다음을 상상하게 되잖아요.그래서 자기가 그림을 그릴 수 있다면 그림을 그리고, 그릴 수 없다면 글을 쓰죠. 그걸 친구들이 보여달라고 하니까 보여줘요. 하지만 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보여달라고 하기 시작하면 무료로 책을 많이 만드는 건 무리니까 그럼 돈을 조금 받을게요, 라는 전개가 되고. 그리고 그 사람의 굉장한 재능이 편집자에게 발견되어서 데뷔로 이어진다…. 그 사람이 작가가 되어서 막대한 돈을 출판사에 벌어들였다면, 그건 만화 업계에서 일어나는 한 가지 선순환이라고 볼 수 있죠. 재생산이라는 경제활동이 이뤄지고 있어요.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그런 식으로 창작활동을 시작하게 되잖아요. 표현의 자유란 뭐야? 나와있는 작품을 즐긴다는 건 뭐야? 라는 의문은 앞으로도 여러 가지 형태의 문제로 제기 되겠지만 저는 만들어내는 것 자체를 규제하는 건 별로 좋지 않다고 생각해요. 거기서부터 굉장한 재능들이 탄생하니까요.
카네다: 맞아요. 소비하고 있을 뿐인 사람한테선 새로운 것이 태어나지 않아요. 일본에 이렇게 많은 비엘 작가가 활약하고 있는데엔 코미케의 존재를 빼고 말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2차 창작을 전부 규제하기 시작하면, 우선 새로운 비엘 작가가 나오지 않을 거고, 그리고 비엘에서 다른 장르로도 활약하는 범위를 넓혀가는 영재들이 나오기 힘들어지죠. 한 마디로 만화 업계 전체를 놓고 봤을 때, 쇠퇴해가는 거예요. 그래서 2차 창작의 규제 라는게 당장 내일부터 에로 만화를 볼 수 없다는 문제만이 아닌거죠.
후쿠다: 무언가를 창작할 때 그 다음을 상상해보는 것이 좋은 연습이 되니까요.
야마모토: 그리고 패러럴을 상상해본다는 방법도 있죠.
카네다: 등장인물들이 현대인이었다면? 학원물이었다면? 라던가 말이죠.
야마모토: 흔히 “부녀자 필터” 라고 불리는 “행간 사이를 읽는다” 라는 행위는 점과 점 사이를 이어가는, 사실 엄청난 두뇌 활동이예요(웃음).
카네다: 예를 들면 전 르네상스 요시다 씨가 2차창작에서 그린 “테니스의 왕자” (이하 테니프리) 책을 갖고 있는데, 애니판에서 1화에만 등장한 3학년생, 야마토 선배라는 사람이 있어요. 이 인물이 르네상스 씨 안에서 엄청나게 부풀려져서 “아카네 신지에서 꽃이 지다” 의 주인공 중 한 명인 숙박업소의 젊은 점장으로 나오고 있는 걸 발견한 순간의 그 놀라움이란……(웃음).
후쿠다&야마모토: (웃음)
르네상스 요시다
야마모토: 동인지와 이렇게까지 밀접하게 이어져있는 장르는 달리 없으니까요.
후쿠다: 요시나가 후미 씨는 “사랑이란 밤에 깨닫는 것(원제:집사의 분수)” 등 프랑스 물 비엘도 그리셨는데 이것 역시“베르사유의 장미”의 동인에서부터 시작한 거라고 생각해요. “베르바라” 에선 모두가 혁명을 위해서 죽고, 행복해지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죠. 그러니까 계속 머릿속에 남는 거죠. 하지만 요시나가 상의 작품에선 행복해져요. 혁명이 일어남으로서 행복해진 사람들을 그리고 있어요. 그것 역시 “베르바라” 에 보내는 하나의 진혼가라고 생각해요.
야마모토: 2차 창작에 빠져있는 작가는 좋아하는 캐릭터의 관계성을 파헤치면서,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 혹은 분명 이런 이야기가 있었을 거다, 라는 상상을 해요. 그리고 그걸 형태를 갖춰 표현해낼 수 있는 사람은 오리지널 창작물도 그릴 수 있는거죠.
비엘 만화의 앞날
야마모토: 화제는 좀 변하지만 지금 주목하고 있는 비엘 작가가 있나요?
후쿠다: 시대로 따지면 캄브리아기죠. 대폭발.
카네다: 그러게요. 이렇게나 불황인데 말이죠.
후쿠다: 제가 주목하고 있는 건 사이케 데리코 씨의 “チョコストロベリーバニラ”네요. 3P물인데, 비엘은 1곧휴 1구멍 주의라고 오랫동안 불리어왔지만, 그걸 꾸준히 반복해오면서 “사랑이 있다면 3P도 괜찮지 않아?” 라는게 최근의 분위기 같아요. 그 중에서도 가장 납득한 게 이 작품이었어요.
야마모토: 이 작품처럼 요즘 동인에선 1~2년 사이에 난교물, 모브물이 늘어났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카네다: 역시 누군가가 그린 걸 읽고 나면 “의외로 좋군” 하고 납득하게 되는 걸까요? 2차 창작에선 “진격의 거인”의 세계관은 모브레가 일상처럼 일어나고 있어도 무리가 없는 느낌이란 말이죠. 리바이 병장이라던가 쟝…….
후쿠다: 아, 그러게요. 관계성이랑 성격을 따져보면 모브레하기 쉬울 지도.
야마모토: “진격의 거인”이라면 에루리(엘빈x리바이)에서 베테랑 작가들이 일제히 2차 창작으로 돌아왔죠.
카네다: 맞아요. 2차 창작이라면 “TIGER & BUNNY”를 그리는 프로 작가도 많았죠. 동인 뿐만 아니라 상업에서도 모브를 중심적인 에피소드로 다루는 작품이 있으려나요?
야마모토: 상업 만화에서 모브물은 좀 어려울지도요. 소설에는 있지만요. 만화에서 3P나 4P물이 그렇게까지 크게 유행하지 않는 건 역시 그림의 문제도 있지 않을까요. 떡씬 하나를 봐도 소설만큼 농염하게 묘사하기 힘들고, 맨손 체조인가요? 싶은 그림이 나오기도 하니까요 (웃음).
후쿠다: 그 외에는 리버스도 있네요.
카네다: 네타바레라 죄송하지만 쿠모타 씨의 “사랑스러운 고양이” 에선 너무나 태연하게 리버스를 그려내더라고요. 공수가 바뀌는 리버스는 다른 작품에서도 그려져왔지만 사랑하고 있으니까 안길 수도, 안을 수도 있어야지!! 하고 무리하게 주장하는 느낌이 들었는데, 쿠모타 씨의 “사랑하고 있으니까 나도 너를 안고 싶어” 라는 흐름은 여태까지 별로 본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너무나 자연스러운 분위기로 그려져 있어서 굉장히 좋다고 생각했어요.
이노우에 사토
야마모토: 제가 요즘 반복해서 읽고 있는 건, 읽으면서 히죽히죽 행복해지는 사쿠라비 하시고 씨의 “안기고 싶은 남자 1위에게 협박당하고 있습니다”네요. 그리고 굉장히 개인적인 모에로 골라보자면 텐젠 모모코 씨의 “無防備、衝動あるいは初恋”를 보며 바닥을 굴렀네요(웃음).
카네다: SHOOWA 씨도 좋죠. 수인을 그린 “ニィー二の森” 은 재밌었어요. 알콩달콩한 비엘이 전성기인 지금 소외감이나 차별이란 테마를 너무 무겁지 않게 그려내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야마모토: 그리고 나카무라 아스미코 씨 같은 작가성을 확립한 작가가 활약하고 있으면 장르의 수명이 길어지겠죠. 올해 발매된 “동급생” 시리즈의 속편인 “O.B.”는 시리즈 속편의 모범 사례죠.
후쿠다: 인기 캐릭터인 하라 선생을 중심으로 모두를 행복하게 했어요. 정말 뛰어난 스토리 텔러예요. 화풍은 자유분방하게 아티스틱한데 독자의 기대에 응하는 자세는 정말 묵묵한 장인 같아요. 첫번째 책부터 단 한권도 실패가 없는 요네다 코우 씨 작품도 죄다 걸작이죠.
카네다: “지저귀는 새는 날지 않는다” 의 쓰리피스 수트는 정말 너무 멋있어요!
야마모토: 수트라고 하면 후다가와 와카 씨가 “ねくたいや”에서 넥타이 전문점을 무대로 그리셨는데, 넥타이를 만드는 사람에게 모에를 느꼈습니다 (웃음). 지금도 비엘에는 직업물이 많네요.
카네다: 전 비엘이란 장르엔 “이런게 있으면 좋겠다” 보다 “이런게 있었구나!” 하고 자기 안의 인식 범위를 넓히게 되어서 놀라게 되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아요. 모두가 자유롭게 자기가 좋아하는 걸 그림으로써, 제가 상상해보지도 못한 새로운 모에가 계속 나타나는 거라고 생각해요.
야마모토: 저는 한낱 독자일 뿐이라서 앞으로도 비엘 작품이 계속 나오도록 열심히 살 수 밖에 없구나, 그것 밖에 할 수 있는게 없구나 싶어요. 그래서 서점 직원이 “풉” 하고 웃을 정도로 장바구니에 비엘 만화를 잔뜩 담습니다. (웃음)
카네다: “아, 이 녀석 비엘 밖에 안사잖아! 아, 그리고 “겁쟁이 페달” 말이지. 아, 네” 라는 반응 (웃음).
아, 그리고 코다카 카즈마 씨의 만화가 당시 그렇게 충격적이었던 건...
우선 그림체의 변화(소년 만화의 그림체를 가져와서 호모를 그림)가 매우 파격적이었음. 그야말로 소녀만화의 연장선에 있던 것이 소년 만화와 융합되는 순간. 그리고 재밌었다고 한다.